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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공인 KBS한국어능력시험

제83회 KBS한국어능력시험 최고득점자 후기 - 전희수

작성자 KBS한국어진흥원 작성일 2025-03-04 조회수 20,399
수험생
서울대학교 언어학과(졸) 전희수
후기 내용
안녕하세요, 제83회 KBS한국어능력시험에 응시한 전희수입니다. 단기간 어설프게 공부하고 응시했다고 생각한 터라 미흡한 실력을 절감하며 터덜터덜 시험장을 나왔는데, 뜻밖의 소식을 듣게 되어 기쁘고 영광스럽습니다. 부족하지만, 시험을 준비하시는 분께 작게나마 도움이 되기를 바라며 짧은 후기를 남깁니다. KBS한국어능력시험은 언어 직관을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하는 시험입니다. 듣기·말하기, 쓰기, 읽기와 창의 영역에서는 국어 감각을 살려 제시된 내용의 맥락과 문제의 의도를 파악해야 합니다. 반면, 어휘, 어법과 국어 문화 영역에서는 시험에 필요한 내용을 암기한 후 문제에 적용하는 능력이 필요합니다. 전자의 영역은 기출 문제를 풀며 출제 의도와 풀이 방법을 자연스럽게 체득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번 후기에는 후자의 영역 중에서도 특히 복합적인 학습이 필요한 어휘와 어법 영역의 학습 과정을 공유하고자 합니다. 먼저 어휘 영역은 시험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가장 큰 벽으로 다가왔습니다. 처음 수험서를 펼쳤을 때, 가나다순으로 나열된 방대한 고유어와 한자어 목록을 보고 마치 망망대해 한가운데 떨어진 듯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이 많은 단어를 전부 외워야 하는가? 가능한가?’라는 의구심이 들었지만, 처음 며칠은 모든 어휘를 달달 외우느라 네 시간을 쏟았습니다. 그러나 곧 책에 나오는 모든 어휘가 출제되는 것도 아니며, 반대로 책에 없는 어휘도 출제될 수 있다는 점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때부터 무작정 암기하는 대신, 단어의 구조를 이해하는 방식으로 접근했습니다. 저는 20대 한국어 화자로서 생소한 고유어가 많아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살면서 단 한도 사용해 본 적이 없는 어휘를 공부하려니 다른 영역보다도 더욱 막막하게 느껴졌습니다. 이런 고민을 50대 부모님께 털어놓자, 제가 어려워하던 고유어 대부분이 부모님 세대에서는 자연스럽게 사용되던 표현들이라며 실제 상황과 함께 각 어휘가 쓰이는 맥락을 설명해 주셨습니다. 덕분에 고유어는 어휘 그 자체보다, 상황과 연결 지어 문맥 속에서 의미를 떠올리면서도 아름다움을 간직한 말이라는 점을 깨닫고 열린 마음으로 학습에 임할 수 있었습니다. 고유어의 뜻풀이와 예문을 읽고 스스로 문장을 만들어 말하며 의미를 익히는 것이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도무지 눈에 익지 않는 단어는 추려서 따로 반복적으로 암기하고 나니, 고유어 문제를 수월하게 풀 수 있었습니다. 한자어의 경우, 보통 두 글자로 이루어져 있으며 많은 경우 각 글자의 뜻이 합쳐져 단어의 의미를 형성합니다. 따라서 개별 한자의 모양을 뜯어보며 의미를 이해하면 단어의 뜻을 유추하기 쉬웠습니다. 익숙한 한자어에서 앞뒤 글자가 바뀌거나 새로운 글자가 추가되었을 때 의미가 어떻게 변하는지 변화 양상을 관찰해봄으로써 여러 개의 한자어를 그룹망 모양으로 묶어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관용 표현과 순화어도 의미에 직관적으로 접근하는 방식이 효과적이었습니다. 관용 표현은 우리가 일상 대화에서 자주 사용하는 말이므로, 뜻풀이와 예문을 읽은 후 누군가에게 그 표현을 사용하는 것처럼 연습해 보는 것이 유용하였습니다. 순화어의 경우 단순히 암기하기보다 기존 표현이 순화어로 바뀐 과정과 그 이유를 찬찬히 이해해 보는 것이 도움이 되었습니다. 어법 영역은 까다로운 어문 규범을 일정한 기준 없이 적용해야 하므로 많은 어려움이 따르는 부분입니다. 특히 띄어쓰기 및 부사의 문법, 어미·어간·어미 표기 규정은 세부적인 규칙이 많고 예외도 잦아 익히기 어려운 영역이었습니다. 가장 기억에 남는 문제 유형은 어법 적용에 대한 원칙과 예외 사항을 구분하여 익히는 것이었습니다. 많은 맞춤법 규정이 ‘이러한을 원칙으로 하되, 예외할 적에는 예외로 한다’는 구조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따라서 원칙과 예외 사항을 따로 정리하여 비교하며 학습하니 규칙을 더 단순하게 정리할 수 있었습니다. 더불어, 한국어 규범은 일상에서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에 자연스럽게 녹아들어 있을 뿐만 아니라 언어 현실에 맞추어 변화하기도 합니다. 우리가 무의식적으로 익숙하게 느끼는 표현 속에서 답을 찾아가는 방식으로 접근하니 학습 부담을 덜어낼 수 있었습니다. 한국어로 말하고 생각하는 우리가 우리말을 깊이 있게 공부하는 것은 단순히 시험을 위한 과정이 아니라, 자신의 세계를 넓히고 사회와 세대를 이해하는 하나의 창이라고 생각합니다. 초등학생 시절 ‘우리말 바로 쓰기 대회’를 준비하며 느꼈던 설렘과 순수한 재미를 다시금 체험할 수 있어 뜻깊고 행복한 시간이었습니다. 이번 성취의 기쁨을 발판 삼아 새로운 도전을 향해 나아가겠습니다. 이 글을 읽어주신 분들께서도 독하시든 바 모두 이루시기를 바랍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