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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공인 KBS한국어능력시험

제80회 KBS한국어능력시험 최고득점자 후기 - 권민정

작성자 KBS한국어진흥원 작성일 2024-08-29 조회수 72,419
수험생
서울대학교 디자인과 재학 권민정
후기 내용
안녕하세요. 제80회 KBS한국어능력시험 응시자 권민정입니다. 이번 KBS한국어능력시험의 최고득점자라는 연락을 받았는데, 이렇게 좋은 성적을 얻으리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해서 응시 후기를 쓰는 지금도 행복감과 벙벙함이 교차합니다. 대단한 비결이나 구구절절한 사연 같은 것은 없지만, 제가 시험을 치르며 느끼고 경험한 것들을 소소하게나마 이 글을 통해 나누면 어떨까 합니다. 시험 당일 아침, 사실 저는 조금 엉뚱하게도 감상에 젖어 있었습니다. 청소년 시절 저에게 국어가 첫사랑 같은 과목이었기 때문이었을까요. 시험장인 모 중학교의 운동장을 빙 둘러 중앙 현관을 지나고 계단을 올라 교실을 찾아가는 동안, 저는 국어의 매력에 처음 빠졌던 중학생 때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국어국문학을 전공하려다 도중에 생각을 바꾸어 미대에 진학했고 한때는 바쁘다는 핑계로 독서를 멀리한 적도 있었으나, 여전히 국어를 공부하는 것이 그때처럼 즐거워서, 그리고 그 즐거움으로 이렇게 한국어 시험에도 응시할 수 있어서 참 다행이라고 느꼈습니다. 그런 감사한 마음으로 임한 시험에서 의미 있는 결과를 얻게 되어 더욱 기쁩니다. 하지만, 이번 시험을 준비하는 모든 과정이 마냥 감동스럽고 평탄했다는 이야기는 결코 아닙니다. 기출문제에 나오는 어휘들은 나의 모국어가 맞나 싶을 정도로 거의가 모르는 단어였고, 수능에 없던 낯선 창안 영역은 자신 있게 고른 답이 오답인 경우가 몹시 찾았습니다. 문제의 난도를 차치하더라도 120분을 온전히 집중하여 문제집과 씨름하는 것 자체가 꽤 힘들었습니다. 그런 막막함으로 시작한 공부였습니다. 가장 많은 시간을 쏟은 것은 어휘와 어법 영역이었습니다. 어휘 영역에서는 단어의 뜻풀이를 하나하나 외우면 좋았겠지만, 그러기에는 단어의 양이 방대해서 최대한 뜻이나 느낌이 비슷한 것끼리 묶어서 암기했습니다. 어법은 국립국어원 누리집에서 열람할 수 있는 네 가지 어문 규범을 중심으로 공부했는데, 잘못 알고 있던 개념은 바로잡고 이미 알고 있던 규정은 그 예시까지 자세하게 확인하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특히 기출문제를 풀면서 어문 규범의 예시 단어들을 꼼꼼하게 봐 두면 맞출 수 있는 문제가 꽤 생긴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위 두 영역은 시간을 투자하는 만큼 점수가 오르는 영역이라고 생각하는데, 저는 본시험에서도 헷갈리는 문제가 몇 있었기에 더 많이 공부하지 못했다는 약간의 아쉬움이 남기도 합니다. 그 밖에도 창안 영역은 수능 문제를 풀 때보다 조금 더 다양한 사고의 가능성을 열어 두고 한 단계 뛰어넘어 생각한다는 느낌으로 문제를 풀며 감을 익혔습니다. 읽기 영역은 평소에 글을 읽고 쓰는 것을 생활화하고자 노력했던 점이 도움이 된 것 같습니다. 그래도 긴 지문이 잘 읽히지 않을 때는 소설을 한 권 꺼내 들고 편하게 읽으면서 긴 글에 다시 익숙해지게끔 긴급 처방을 내렸습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각자에게 맞는 시험 전략을 세우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읽기 영역의 학술 텍스트에서 걸핏하면 시간을 한없이 써 버리는 편인지라, 다른 부분에 쓸 시간도 충분히 확보하고자 학술 텍스트 문제를 가장 마지막에 푸는 방법을 택했습니다. 국어 문화 영역은 서로 다른 문제가 하나의 지문으로 묶여 있는 것이 없어 다른 영역에 비해 풀이 흐름을 이어갈 필요가 없다고 생각해, 듣기 • 말하기 방송 중간중간의 공백을 이용 하여 해결했습니다. 개인적으로 한번 암기한 단어나 문법 규정이 문제를 풀 때는 기억나지 않다가 뒤늦게 떠오르는 경우가 간혹 있어서, 검토 시에는 어휘와 어법 영역을 중심으로 훑는다는 나름의 규칙도 정해 보았습니다. 끝으로, 이 글을 읽으시는 분들께 제가 공부하며 느꼈던 즐거움을 공유하고 싶습니다. 기출문제를 풀면서 분명 몇 년 전에 읽었는데 까맣게 잊고 있던 소설을 만나고는 반가움에 눈이 휘둥그레지기도 했고, 인상적이었던 시를 친구들에게 공유하여 감상을 나누기도 했습니다. 새로 알게 된 맛깔난 고유어가 있으면 가족에게 소개하고 일상생활에서 마치 유행어처럼 부러 그 단어를 더 써 보기도 했습니다. 이처럼 저는 시험을 준비하면서 얻어 가는 것은 성적만이 아니라 특별한 즐거움이기도 하다는 소중한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아마 부족한 실력의 제가 뜻밖에도 최고득점자가 될 수 있었던 이유라면 이렇게 국어를 즐기고자 하는 태도에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조심스레 해 봅니다. 처음 국어 공부의 맛을 알았던 중학생 때의 마음을 십 년이 되도록 간직하고 있는 것처럼, 저는 이번 KBS한국어능력시험을 준비하고 치르는 과정과 이 응시 후기를 쓰는 순간의 마음을 또한 오래도록 기억할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것을 또 한 번의 계기로 삼아 앞으로도 무궁무진한 우리 말의 세계에서 노닐며, 꾸준히 공부하여 다방면에서 더욱 풍부한 국어 생활을 하고 싶습니다. 제가 몰랐던 어휘의 개수만큼이나 넓은 세상이 있고, 이해하지 못했던 지문만큼 다채로운 세계가 존재할테니까요. KBS한국어능력시험을 준비하시는 모든 분께서 원하는 성적은 물론이거니와, 국어의 맛과 그 즐거움을 얻어 가는 경험을 하셨으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