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공인 KBS한국어능력시험
제78회 KBS한국어능력시험 최고득점자 후기 - 태서현
작성자 KBS한국어진흥원 작성일 2024-05-02 조회수 86,304 - 수험생
- 서강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심리학과 졸 태서현
- 후기 내용
- 안녕하세요! 제78회 KBS 한국어능력시험에 응시한 태서현입니다.
저의 부족함을 통감하며 본간 시험이었는데, 뜻밖에 좋은 성과를 거두어 기쁘면서도 어리둥절합니다. 제가 최고 득점자라니요……혹시 전산 오류가 있었던 것은 아닌지……. 글을 제출하고 나면 얼마 뒤 정정 전화가 도착하는 것은 아닐까 조마조마한 마음입니다만, 일단은 최선을 다해 복기해 보겠습니다.
저는 진로 때문에 이 시험을 준비했습니다. ‘책 좋아하는 사람들은 다 비슷비슷한가 봐’에 해당하는 직군 중 하나인 출판 편집자인데요. 출판을 전문적으로 배울 수 있는 기관에서 마침 신입생을 모집한다고 하기에 얼른 신청했더니, 선발 과정에 필기시험이 있는 겁니다. 심지어는 국가 공인 한국어 시험만큼이나 어렵다는 시험이요! 뇌를 가볍게 하고 가서는 합격할 수 없으리란 생각에 준비를 단단히 하기로 마음먹었고, 이왕 단단히 하는 김에 KBS 한국어 능력 시험도 함께 응시하기로 했습니다. 어차피 공부할 거, 시험 하나를 더 칠 수 있다면 치는 게 이득이니까요.
‘책 덕후’로서 다져진 독서량에 뭐든 글로 써놔야 마음이 놓이는 문자 중독, 틀린 맞춤법만 보면 잘못을 하는 편집증적 성향에다 대학교에서는 1,440시간 국어국문학을 공부하기까지……. 한국어시험에 유리할 만한 요소들을 두루 갖추어 공부를 시작하기도 전부터 우쭐해져 있었던 저는 이내 겸손을 배웠습니다. 세상에 제가 모르는 단어가 이렇게 많을 줄은 꿈에도 몰랐어요. 손윗이나 발윗의 가느다란 부분은 ‘회묵’이라고 부른다니까! 고삭부리’라는 처음 보는 말이 ‘소식좌’와 비슷한 뜻이래나! 빈번한 오답으로 인해 고만 ‘몽니’를 부리게 되었지 뭐예요. 참, 이때 ‘~로 인해’는 ‘~로’로 바꿔 써야 한답니다. ‘~로 인해’는 번역 투 표현이거든요.
생각보다 높은 난도에 좌절하던 것도 잠시, 오히려 승부욕이 생긴 저는 눈에 불을 켜고 교재를 읽었습니다. 최종적으로 사용한 책들은 다음과 같습니다.
1) 개념과 문제가 함께 있는 두꺼운 수험서,
2) 기출문제만 수록된 수험서,
3) 맞춤법을 알기 쉽게 풀어 쓴 서적.
먼저 1) 두꺼운 수험서의 경우, 특히의학이나 국어문화 영역에 도움이 되었습니다. 두 영역은 워낙 방대하기 때문에 그냥 흐려 보면 절대 안 되겠더라고요. 수험서의 세밀한 설명이 나왔거나 달콤 과 같은 친구들만 모여 있어 보기 편했습니다.
2) 기출문제 수험서의 경우, 듣기, 쓰기, 창안, 읽기와 같이 암기보다 문제 풀이가 중요한 영역들에 도움이 되었습니다. 두꺼운 수험서가 유용하기는 해도 이런 영역에서는 ‘개념 설명 + 시간에 문제를 더 줘’하는 생각이 들었는데, 그럴 아쉬움이 말끔히 씻기는 기분이더라고요.
맞춤법 서적으로 어법 영역에 가장 도움이 되었습니다. 저도 수험서만 주구장창(주야장천이 맞는 표현입니다) 들여다보던 중에 일반 도서가 더 유용하다니 당황스러웠는데요. 어법 영역에 워낙 딱딱한 내용이 많아서 그런 것 같습니다. ‘한글 맞춤법 총칙’이라든가 ‘표준어 사정 원칙’ 같은 건 아무리 읽어봐도 감이 안 잡히지 않나요……. 반면 그 책에서는 편집자인 저자가 일을 하면서 보았던 오탈 맞춤법 오류를 재미있게 설명해 놓아서 머리에 쏙쏙 들어왔습니다. 실제로 그 책 덕분에 한 문제 맞혔고요.
실전에서는 은근히 시간 배분이 중요한 것 같습니다. 물론 120분이라는 시간이 엄청 짧은 것은 아니지만, 문제 하나하나 정확한 근거를 찾아가며 풀기에는 아무래도 부족하더라고요. 가능하다면 기출문제 풀 때도 두 시간 맞춰놓고 푸시는 걸 추천드립니다. 추가로, 듣기 평가 중에 다른 문제를 풀 것인지 말 것인지, 읽기 영역으로 넘어가는 마지노선을 몇 분으로 잡을 것인지도 대강 정해 놓으시면 좋아요. 저는 음성이 나올 때는 무조건 듣기 영역을 보고, 중간중간 음성이 없는 시간에만 국어문화 영역을 풀었습니다. 읽기 영역으로는 1시간 지나놓을 때쯤 넘겨보던 것 같아요.
이렇게 좋은 성적을 위해서라기보다는, 매일 사용하는 언어를 ‘덕질’한다는 마음으로 임하시면 시험 준비가 더욱 즐거워질 것 같습니다. 아무리 맞춤법을 잘 안다더라도 무뚝 가려운 부분이 몇 가지는 있을 텐데, 그런 걸 짚고 넘어간다고 생각하셔도 되고요. 월요일 저녁마다 거실을 장식하는 한국어 퀴즈 프로그램의 상금을 노려보셔도 되겠습니다. 이러나저러나 다들 본인에게 맞는 공부법을 찾아 즐겁게 공부하셨으면 좋겠다는 마음입니다. 물론 들린 표기를 보았을 때 느껴지는 거슬림도 더 늘어나겠지만, 그 정도는 지성인의 고충으로 자자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