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공인 KBS한국어능력시험
제76회 KBS한국어능력시험 최고득점자 후기 - 김아영
작성자 KBS한국어진흥원 작성일 2023-12-28 조회수 76,505 - 수험생
- 취업준비생 김아영
- 후기 내용
- 안녕하세요. 76회 KBS한국어능력시험 응시자 김아영입니다.
제가 이런 글을 쓰고 있다니 아직도 얼떨떨합니다. 사실 시험 보기 이틀 전까지도 이번엔 그냥 취소하고 다음에 제대로 준비해서 볼까 고민했거든요. 실질적으로 준비할 시간이 나흘 남짓 밖에 없었고 심지어 시험 바로 전날에 컴활 2급 실기가 있어서 실기 연습에 더 치중했거든요. 결국 사흘 내내 한잠도 안 자고 한국어 시험을 보러 갔고 이것만 끝나면 잘 수 있다는 일념 하나로 전에 없던 초인적인(!) 집중력을 발휘해서 응시했습니다. 얼마나 몰입했던지 시험이 끝났을 땐 정말 이지 사우나를 하고 나온 것처럼 개운했어요.
확신이 안 서는 답이 서너 개 있어서 시험이 끝나자마자 찾아봤는데 제가 고른 답이 다 맞았습니다. 운 좋으면 1급도 나오겠다고 생각했지만 과욕이겠거니 자신을 다잡았습니다.
그랬던 제가 최고점이라니, 감사할 따름입니다. 혹시나 '내가 더 열심히 준비했는데' 하고 억울할 분들이 계실지도 몰라 어떻게 이런 결과가 나왔는지 나름대로 까닭을 찾아봤습니다. 그저 운이 좋았다고 둘러대기에는 죄송스러우니까요.
일단 저는 우리말을 사랑합니다. 이게 무슨 낯간지러운 소리냐고요? 다시 말하면 평소에도 늘 바른 말, 고른 말을 신경 쓴다는 뜻입니다. 연예인이 수상 소감을 말할 때 '이 자리를 빌어'라고 말하면 '그게 아닌데' 하고 혼자 속을 끓이고, 기자가 '~로 인해,'보여집니다', '~같은 경우' 등 번역투 말투를 쓰면 절로 아랫입술을 깨뭅니다. 그렇다고 일상생활에서 다른 사람 말에 일일이 트집을 부린 적은 한 번도 없으니까 오해 마세요.
한때는 고유어의 말맛에 푹 빠져 누가 시키지 않아도 혼자 사전을 뒤적이며 아무도 쓰지 않는 고유어를 발견하는 취미를 즐기기도 했습니다. 고등학생 때는 수험서보다 한국 현대 단편집을 자주 봤고요. 이렇다 보니 어휘, 어법, 국어문화 분야에 많은 시간을 쏟을 필요가 없었고 공부하더라도 머릿속에 있는 걸 정리해주는 수준이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100% 평소 실력으로 응시했다는 건 아닙니다. 모의고사 문제집만 세 권이나 봤습니다. 한 회차에 평균 열다섯 개 정도 틀리더군요. 시간도 턱없이 모자랐습니다.
하지만 실전에서 받는 압박감과 부담감을 집중력으로 바꾼다면 여러분도 분명 평소보다 좋은 실력을 발휘할 수 있을 거예요.
혹시 '나는 한국 문학에 전혀 관심이 없는데' 하는 분들이 계신다면 도서관에 가서 중고 등학생을 위한 현대소설, 현대시, 고전문학 모음집을 빌려 보세요. 거기 나온 주요 작가와 대표작만 알아도 도움될 거예요. 저도 시험 전날 그렇게 해서 한 문제 맞혔습니다.
그리고 솔직히 말하면 운도 중요합니다. 단적으로 이번 회차에서 담양을 대표하는 가사 문학을 묻는 문제가 있었는데 제가 전라도 출신이라 담양하면 소쇄원과 면앙정가가 절로 떠오르더군요. 시내버스 안에 틀어놓은 지역 홍보 영상이 도움이 될 줄은 몰랐습니다.
이제 전 외국인에게 한국어를 가르치는 한국어 교원 자격증을 목표로 공부할 것입니다.
KBS 한국어능력시험에 응시한 건 제가 정말 남을 가르칠 국어 교양이 있는지 궁금했기 때문입니다. 객관적인 증거도 없이 '난 우리말을 아끼고 사랑해'라고 말하고 다니기 부끄러웠는데 KBS 한국어능력시험 1급이라는 물증이 생겨서 뿌듯합니다. 대부분 실리적인 목적으로 응시하실 텐데 거기에 덧붙여 이 시험으로 말미암아 언어 습관을 되돌아보고 올바른 언어 습관이 생긴다면 더 큰 이익이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저도 이 년마다 한 번씩 시험을 보면서 끊임없이 정진하겠습니다.